2006년 10월 30일
우리는 아직도 정말로 빈곤한가?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주원이 형과 잠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의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 이었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제가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주머니엔 언제든지 원하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핸드폰이 있고, 손에는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노트북이 들려있고, 지갑 속에서는 현금이 없어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카드들이 들어있다. 분명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풍요로움을 한껏 누리고 있는 우리들이다.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과거 5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생활을 가져다 주었고 삶의 질을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고, 사람들이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먹을 것은 싼 가격에 풍족하기 그지없다. 음식점은 어디에 가나 존재하고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도 다양하다. 또한 우리는 음식을 남기기 까지 한다. 적어도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빈곤이라는 말은 이제 현대화된 사회의 근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아프리카나 중동 등에 극심한 기아와 빈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상황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Map data 출처 : World Bank (http://www.worldbank.org)
나의 주된 견해는 '우리는 이미 충분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고 빈곤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라는 데 반해, 주원이 형의 생각은 '우리가 자신을 빈곤하다고 생각하면 그것 자체도 빈곤의 한 모습이다'라는 입장이었다. 즉, 어떠한 사람이 생각하는 입장, 개인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빈곤의 존재를 결정하는 주요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최첨단 기기들을 지니고 고급 차를 몬다고 해도 자신이 빈곤하다고 생각하면 빈곤이 존재한다라는 의미이다.
분명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없어진다고 해도 상대적인 빈곤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빈곤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행복의 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보자, 한 중소 기업의 연봉 10억의 CEO가 있다고 치자. 그는 자신의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자신보다 잘 나가는 중소기업과의 경쟁 등에서 큰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이 충분한 돈을 벌어 들이지 못하고 대기업의 CEO들처럼 좋은 경비행기를 못 몰고 다니는 것을 한탄하며 자신이 빈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 빈곤한 것일까? 오직 각각 사람의 개인적인 관점만을 주시하고 사회적인 관점을 고려치 않는다면 그는 연봉으로 10억밖에 못 버는 빈곤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대중들 앞에서 나는 너무 빈곤하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 말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그가 자신이 (빈곤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할 지 모른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결국 개인 자신의 관점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전체적인 사회적 관점의 중요성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결국 개인이 생각하는 빈곤은 자신에게서 행복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전체적인 사회적 관점으로 봤을 때,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그것도 우간다가 아닌 한국이라는 세계 13위 경제 대국에서) 빚을 지지 않고 개인 소유의 핸드폰과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빈곤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개인의 생각만 따지게 된다면,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하기 때문에, 더 높은 곳을 올려다 보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인의 생각은 다수의 생각을 종합한 사회적 관점에 비해서 상당히 이기적일 수 있다. 물론 이기적인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이기심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는 빈곤을 마저 없애줄 것이기에..
결국, 우리는 이미 충분한 풍요로움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만일 세상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우리와 떨어진 곳의 빈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련 포스팅
세상을 구하는 방법 (http://kkhsoft.egloos.com/2609257)
주머니엔 언제든지 원하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핸드폰이 있고, 손에는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노트북이 들려있고, 지갑 속에서는 현금이 없어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카드들이 들어있다. 분명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풍요로움을 한껏 누리고 있는 우리들이다.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과거 5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생활을 가져다 주었고 삶의 질을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고, 사람들이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먹을 것은 싼 가격에 풍족하기 그지없다. 음식점은 어디에 가나 존재하고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도 다양하다. 또한 우리는 음식을 남기기 까지 한다. 적어도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빈곤이라는 말은 이제 현대화된 사회의 근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아프리카나 중동 등에 극심한 기아와 빈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상황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Map data 출처 : World Bank (http://www.worldbank.org)
나의 주된 견해는 '우리는 이미 충분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고 빈곤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라는 데 반해, 주원이 형의 생각은 '우리가 자신을 빈곤하다고 생각하면 그것 자체도 빈곤의 한 모습이다'라는 입장이었다. 즉, 어떠한 사람이 생각하는 입장, 개인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빈곤의 존재를 결정하는 주요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최첨단 기기들을 지니고 고급 차를 몬다고 해도 자신이 빈곤하다고 생각하면 빈곤이 존재한다라는 의미이다.
분명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없어진다고 해도 상대적인 빈곤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빈곤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행복의 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보자, 한 중소 기업의 연봉 10억의 CEO가 있다고 치자. 그는 자신의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자신보다 잘 나가는 중소기업과의 경쟁 등에서 큰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이 충분한 돈을 벌어 들이지 못하고 대기업의 CEO들처럼 좋은 경비행기를 못 몰고 다니는 것을 한탄하며 자신이 빈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 빈곤한 것일까? 오직 각각 사람의 개인적인 관점만을 주시하고 사회적인 관점을 고려치 않는다면 그는 연봉으로 10억밖에 못 버는 빈곤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대중들 앞에서 나는 너무 빈곤하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 말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그가 자신이 (빈곤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할 지 모른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결국 개인 자신의 관점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전체적인 사회적 관점의 중요성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결국 개인이 생각하는 빈곤은 자신에게서 행복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전체적인 사회적 관점으로 봤을 때,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그것도 우간다가 아닌 한국이라는 세계 13위 경제 대국에서) 빚을 지지 않고 개인 소유의 핸드폰과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빈곤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개인의 생각만 따지게 된다면,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하기 때문에, 더 높은 곳을 올려다 보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인의 생각은 다수의 생각을 종합한 사회적 관점에 비해서 상당히 이기적일 수 있다. 물론 이기적인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이기심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는 빈곤을 마저 없애줄 것이기에..
결국, 우리는 이미 충분한 풍요로움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만일 세상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우리와 떨어진 곳의 빈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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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하는 방법 (http://kkhsoft.egloos.com/2609257)
# by | 2006/10/30 19:25 | B. Easy articles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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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계의 관점은 늘 상대적인거지.
뭐 하루에 한끼도 먹는게 벅찬 나라에 가면 그 사람들 나름대로 난 한끼먹는대신 빵 3조각을 먹는데 저놈은 5조각을 먹으니까 내가 훨씬 불행해 -_- 뭐 이럴수도 있고..
걍 우리 모두 저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는 의미로 들려서 한마디 쏘아붙이고간다-_-~~
난 단정적인 글은 싫어해서.ㅎ 구독자의 권리로 태클을 걸었다 하지뭐 ㅎㅎ
우선 댓글은 모두 환영이야! 리퍼러를 보면 분명 방문자가 있음에도 비판성 댓글이 단 한개도 없다면 난 내가 쓴 글을 무의식중에 대다수의 사람이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거야.. 분명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음에도 말이야.
응.사실 글이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에 조금 결론을 빨리 내버린것 같긴 하네.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행복과 빈곤의 차이, 그리고 작은 관심 정도 가져주는 것은 힘들지도 않은 일인데 괜찮지 않을까 라는거 엿어.
지적해 준 예를 보면, 행복을 인지하는 측면을 보는 거자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글에서 언급했다 시피, 행복은 개인적인 측면의 문제이고 빈곤은 사회적인 측면의 문제라고 했지.. 즉, 행복의 관해서는 주변에서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야.. 그 사실은 나도 인정해.
하지만 행복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일단 현대 삶이 풍요로워 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잖아. 누구나 우리가 과거의 중요한 문제였던 식량의 부족, 질병의 많은 부분들을 해결했다고 생각하잖아.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에서의 빈곤은 이미 사라졌다는 거지.
다시, 너가 얘기한 부분은 "우리가 항상 제3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에 해당하는 질문인것 같은데, 사람에 따라서 관심의 정도는 다를 수 있으나, 그냥 내 생각에는 작은 관심 정도는 우리가 가지는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ps> 혹시 이와 다른 견해가 있다거나 하면 언제든지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글을 남겨줬으면 해.. 그래야 나도 좀더 다양한 관점을 인식하고 생각을 넓혀나갈 수 있잖아.. ^^ㅎ